산지니 소식  

제목  [이택광의 시] 오래, 그냥(버스는 두 시반에 떠났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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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쌀쌀하지만, 햇살 좋은 주말이 지나가는 동안 한겨레 신문에 산지니가 출간한 책 『금정산을 보냈다』 의 시가 한 편 실렸습니다. 이택광의 시라는 추천 코너인데요. 무언가를 오래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냥'하는 것이 좋다라고 표현하시며, <버스는 두 시 반에 떠났다>라는 시를 소개해주셨습니다.

흔히 무엇이든지 의미 두기를 좋아하는데, '그냥'이라는 말은 의미가 없는 듯하면서도 그 어떤 것보다 무언가를 관통하는 표현인 것 같습니다.

원문의 일부는 아래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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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광의 시 | 버스는 두 시 반에 떠났다

오래, 그냥


버스는 두 시 반에 떠났다
-도요에서 / 최영철



하루 예닐곱 번 들어오는 버스에서 아저씨 혼자 내린다
어디 갔다 오는교 물으니 그냥 시내까지 갔다 왔단다
그냥 하는 게 좋다 고갯마루까지 가 보는 거
누가 오나 안 오나 살피는 거 말고 먹은 거 소화시키는 거 말고
강물이 좀 불었나 건너마을 소들은 잘 있나 궁금한 거 말고
그냥 나갔다 오는 거 주머니 손 찔러넣고 건들건들
한나절 더 걸리든 말든 그냥 나갔다 오는 거
아저씨는 그냥 나갔다 온 게 기분 좋은지
휘파람 불며 그냥 집으로 가고
오랜만에 손님을 종점까지 태우고 온 버스는
쪼그리고 앉아 맛있게 담배 피고 있다
그냥 한번 들어와 봤다는 듯
바퀴들은 기지개도 켜지 않고 빈차로 출발했다
어디서 왔는지 아비가 누군지 알 수 없는 새끼를
일곱이나 낳은 발발이 암캐와
고향 같은 건 곧 까먹고 말 아이 둘을 대처로 떠나보낸 나는
멀어져가는 버스 뒤꽁무니를 바라보았다
먼지를 덮어쓴 채 한참



“때로 우둔이 길 없는 길을 오래가게 한다”고 시인은 시집 서문을 갈음했다. 식상한 듯하지만, 요즘 시절을 꿰뚫는 말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문제는 ‘우둔’이라기보다 ‘오래’일 것이다. 무엇이든 지속하기 어려워진 시대에 시인은 오래갈 것을 주문한다. 역설적으로 그 오래가는 것이야말로 ‘우둔’인 것이다. 오래가는 이라면 개의치 않을 문제이지만, 다른 이들에게 무엇인가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는 고집은 ‘우둔’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오래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시인은 슬쩍 그 ‘비결’을 흘려준다. “그냥 하는 게 좋다”고 말이다. 목적 없이 그냥 하는 것, 다시 말해서 목적 없음이라는 목적. 이 오래된 격언이 시인의 생활을 통해 다시 살아난다. 홀로 버스를 타고 그냥 시내에 갔다 오는 한가한 마음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항상 우리는 목적에 시달리고, 무엇인가 달성해야 한다는 닦달에 들들 볶인다. (중략)

2016-10-22 | 경희대 교수 이택광 | 한겨레
원문 기사: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766800.html
자세히 보시려면: http://sanzinibook.tistory.com/1888
2016-10-25 09:4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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